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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4.29.CPBC 뉴스) [문화라운지] 김연준 신부 '영화 마리안느와 마가렛, 상영관 확대 노력'

관리자 2018-02-03 16:05:11 조회수 2,614

* 사단법인 마리안마가렛 대표 김연준 신부,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김성덕입니다> 인터뷰


1960년대 파견 간호사 자격으로 소록도 땅을 밟은 오스트리아 여성 두 명이 있었습니다.

파견 기간이 끝난 후 70대가 될 때까지 봉사한 두 여인은 2005년 홀연히 고국으로 떠났는데요.

바로 소록도 한센병 환자들을 40여 년간 돌본 푸른 눈의 두 천사 마리안느와 마가렛입니다.

두 간호사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영화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개봉했는데요.

오늘 문화라운지에서는 영화 `마리안느와 마가렛`을 기획한 사단법인 마리안마가렛 대표 김연준 소록도 본당 주임신부 연결하겠습니다.



▷ 김연준 신부님, 안녕하십니까?

▶ 안녕하십니까?



▷ 소록도에도 봄이 왔죠?

▶ 네. 봄이 가득 왔습니다.



▷ 기획하신 영화가 상영하고 있는데 소감이 남다르실 것 같아요. 어떻습니까?

▶ 사실 본당 신부하면서 영화를 기획하고 극장에 나왔잖아요.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상상했던 일들이 진짜 현실로 되는구나

그런 생각도 들고, 꿈만 같습니다.



▷ 앞서 제가 잠깐 언급했는데 마리안느와 마가렛 어떤 분들인지 소개 좀 해주시죠.

▶ 1962년에 2월에 소록도의 간호사로서 한센인 처음에는 영아원을 돌보기 위해서 처음에 오셨고, 나중에는 본격적으로 한센인들

치료하는 간호사로서 40여 년 간을 사시다가 홀연히 떠나신 분들입니다.



▷ 40년 사셨으니까 우리 말도 잘 하실 것 같고요.

▶ 네.



▷ 지난 해가 국립소록도병원 설립한 지 100주년 되는 해 아니었습니까? 이번 영화도 소록도 100주년 기념해서 제작했다고 들었는데

다큐영화를 기획하게 된 계기 어떻습니까?

▶ 저는 2005년 11월에 두 분이 떠나실 때 소록도 본당 신부로 있었습니다. 같이 함께 살면서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고 했던 분들인데

떠나실 때 상황을 제가 알잖아요. 그게 가슴이 아팠고 죄송했고 부끄러웠습니다. 그 분들이 수녀님들로 알려졌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떠나신다고 할 때 `잘 됐다. 고생하셨는데 집에 가시면 돌아가시면 수녀원에서 편안하게 노후를 보내시겠구나`라고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 그렇게 생각했겠네요.

▶ 그런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거든요. 그 분들은 수녀님으로 불렸지만 사실은 선교사 평신도지 정식 우리가 생각하는 수도복을 입고

수녀옷 입고 하는 그런 분들이 아니거든요. 오스트리아 그리스도왕 수도회에 재속회가 있거든요. 거기에 수도자처럼 생활하기는

하지만 수녀원 개념은 아닙니다. 아무튼 그 분들이 오스트리아 돌아가셨을 때 떠난 곳은 수녀원이 아니고 수녀원이 없기 때문에

자기 집으로 가신 것이죠. 빈 손으로. 70이 넘은 나이에. 그런 사정들을 제가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굉장히 부끄럽고 저희들이

모셔야 되잖아요. 또 보수를 받지 않고 사셨거든요. 간호사로 여기에 자원봉사자 신분으로 간호사로 평생을 사셨는데 보건복지부에서

운영하는 소록도 국립병원은 국가에서 어떠한 월급도 42년 간 받은 적이 없거든요. 그리고 연세를 드시고 70이 넘으신 상태에서

마리안느 같은 경우는 대장암에 걸렸고 그런 병원비용도 소록도에서는 한센인 기관이기 때문에 밖의 병원을 다녀야 하거든요.

누구도. 그런 것도 힘들고 여러 가지 이유로 이 분들이 떠나기로 결심한 것이죠. 원래는 젋었을 때 소록도에 뼈를 묻겠다고 하셨었어요.

그런데 어쩌면 사실 저희들이 떠나게 만든거예요. 그래서 저로서는 너무너무 죄송했고 부끄러웠습니다. 제가 5년 전에 소록도 본당

신부로 다시 왔는데 10년만에 왔거든요. 보좌신부로 있다가 그런 모든 상황을 저는 알고 있기 때문에 100주년을 준비하면서 이 분들

이야기를 해야 되겠다. 고마운 것에 대해서는 고맙다고 말을 할 수 있어야 된다. 대한민국에서 이 분들께 감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 그러네요. 진짜 대한민국 위해서 또 소록도를 위해서 낯선 땅에 와서 평생을 바치셨는데 사실 우리가 신부님 말씀대로 모셔야 되고,

돌봐드려야 되는데 이렇게 가버리시는.

▶ 아무것도 못해줬어요. 그리고 수녀님이 아니라는 것도 알리고 싶었어요. 간호사들이라는 것. 간호사의 본보기죠.



▷ 그럼 지금 오스트리아로 돌아가셔서 거기에는 돌봐줄 가족들이나 이런 분들이 아예 없습니까?

▶ 가족들은 있지만 사실 우리 정서에 만약에 빈손으로 70이 넘은 할머니가 아픈 할머니가 살러 온다면 누가 환영해주겠어요.

그것도 빈손으로 오는데 그래서 마가렛은 약간 치매기 있으시고 양로원에 계시거든요. 양로원에 계시는데 더 가슴아픈 것은

세상에 한국에서 평생을 했는데 예를 들면 양로원이 월 300만 원이라면 100만 원 정도는 연금으로 나오고 나머지 200만 원은

정부에서 해주거든요. 국가에서 운영하는 양로원인데 그것은 너무 우리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예요. 한국에서 평생을 보냈는데

오스트리아 정부가 그 노후를 지키고 있다는 것 자체는 정말 우리는 부끄러운 일이죠.



▷ 그렇네요. 우리 스스로를 계속 돌아보게 만들고, 부끄럽게 만드는 그런 일인 것 같아요. 영화제작 하는데도 좀 어려움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 당연히 많이 어려웠죠. 왜냐하면 그분들이 40여년 간을 인터뷰를 거의 안 하신 분들이거든요. 기자들을 정말 싫어하시고

자기가 기사로 나오는 것을 정말 싫어하셨어요.그래서 처음에 촬영갔을 때에는 겨울이었는데 저는 가지는 않았고, 감독 스텝들이

갔는데 많이 당황해 하더라고요.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고 하셔서 우리가 촬영감독이랑 영화감독, 조감독, 시나리오 작기 이 분들이

이거를 촬영을 해야 되냐, 찍어야 되냐, 안 찍어야 되냐라고 고민을 심각하게 하게 됐어요. 그런데 저는 당연히 강하게 거절하는 것

까지도 찍어야 된다.




▷ 그 때가 언제 시점입니까?

▶ 작년, 재작년입니다. 이 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무언가 영상을 남겨야 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돌아가시면 얼마나 큰 손해예요.



▷ 저희들이 어떻게 보면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요. 그냥 돌아가신다고 그러면.

▶ 그렇죠. 맞습니다. 그래서 다행히 나중에는 마음을 열어주셨고, 영화감독도 정말로 마리안느, 마가렛 배려해가면서 촬영을 했고

최대한 그분들의 마음을 존중해서 찍었어요.



▷ 관객 입장에서 영화를 봤을 때 가장 마음을 울리는 장면, 어떤 장면이 있을까요?

▶ 저도 지금 거의 7~8번을 보고 있는데 볼 때마다 다른 것 같아요. 그런데 신앙인 입장에서는 완전하게 자기의 노후를 생각하지

않고 완전한 헌신. 전혀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오늘만 최선을 다했던 그 모습 "떠나라" 거기에 충실했던 그런 모습이고 간호사

입장에서는 자주 소록도 팀장한테 얘기했던 게 간호는 환자들 앞에 있을 때 간호지 의사들 차트 받고, 서류정리하고 이게 간호가 아니다.

간호는 손과 발이 부지런 해야한다. "환자 앞에 있을 때 간호다." 이 말을 하거든요. 그 말이 가장 가슴에 남는 것 같습니다.



▷ 우리나라 간호사가 되려는 모든 분들이 이 영화를 보고 또 한 번 자기 직업에 대한 사명감 이런 것을 느껴봤으면 하는

그런 생각도 들긴 하는데.

▶ 네. 그래서 많은 간호사들이 보고 있습니다만 자부심을 느낄 것입니다.



▷ 이게 또 사실 다큐영화기 때문에 상영관도 적고요. 못 본 분들도 많고, 보고 싶어하는 분들도 좀 있을 것 같은데 이런 분들은

어떻게 하면 볼 수 있을까요?

▶ 저도 그게 가장 큰 고민인데 영화 만든 것보다 극장에 올리는 게 더 힘든 것 같아요. 해 보니까. 대부분 상업영화에서

극장주들은 이 영화가 좋냐, 안좋냐의 기준이 많이 돈을 벌게 해주느냐가 기준이예요. 다큐영화는 이미 선입관이 있는 거예요.

`이 영화는 사람들이 안 볼 것이다.` 그래서 아예 잘 안 열어 줍니다. 저도 그것이 굉장히 본 사람들은 너무너무 좋다고 하는데

보는 시간대도 가까스로 극장에 올려도 시간대가 너무 안 좋아요. 그래서 굉장히 어려운데 살아남기 힘든데 제가 어제 계속

지금 목동 cgv, 대학로 cgv 이 쪽에 뚫고 있거든요. 어차피 제가 발로 뛰어서 몇 군데를 열고 홍보를 하고 해야되는데

아무튼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제가 지금 보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에는 나중에

2~3개월 지나면 dvd 영화가 어느 정도 봤다고 생각하면 dvd쪽으로도 나와서 일반인한테 가게는 할 것인데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감동이 크기 때문에 지금 제가 부분적으로 열릴 수 있도록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 그렇군요. 신부님께서 지금 대표로 계신 사단법인 마리안마가렛 이것은 어떤 기관이고, 어떤 일 하고 있는지 설명해 주시죠.

▶ 영화를 일단 만들기 위해서는 법인체가 필요했어요. 그리고 마리안느 마가렛 42년 간 소록도 계셨을 때 오스트리아 부인회에서

의약품이라든가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품들 그 다음에 평생을 마리안느 마가렛이 오스트리아에 돌아올 것을 대비해서 연금을 넣어준

단체거든요. 오스트리아 부인회가. 그래서 저도 똑같이 평신도들 해외에서 오지에서 고생하는 평신도들을 돕기 위해서 마리안느

마가렛처럼 사는 사람들을 오스트리아 부인회가 마리안느 마가렛을 도왔듯이 그렇게 돕고 그 분들의 노후도 챙겨드리고 마리안느

마가렛 삶을 세상에 알리는 업적으로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 이 두 분을 만나뵙기도 해야될텐데 가끔 가십니까? 어떻습니까?

▶ 오래 6월달에 오스트리아에 있는 주한국 대사관에서 저희 영화 초대를 했죠. 시사회를 해달라고. 그래서 가는 길에 마리안느

마가렛 뵙고 만들어진 영화를 꼭 보여드릴 생각입니다.



▷ 그 분들이 고국에서 자신들의 삶을 담은 영화를 보게되는 것도 참 가슴이 벅찰 것 같은 느낌도 있고요.

▶ 기회가 된다면 오스트리아 쪽에서도 영화를 배급하고 싶습니다.



▷ 그렇게도 됐으면 하는 바람인데 신부님께서 영화 만들고 이렇게 여러 가지 기획하셨는데 우리 청취자 분들이나 세상에 던지는

어떤 메세지를 주고 싶어서 그러신 것입니까?

▶ 제가 마리안느 마가렛 책도 나왔거든요. 소록도의 마리안느 마가렛 책도 나왔고 영화도 이렇게 기획해서 세상에 나왔는데

저는 갈수록 세상이 자기중심적으로 되잖아요. 이기적으로 그리고 뉴스를 보면 항상 좋은 소식보다는 나쁜 소식.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찢어지고, 갈라지고 정말 우리는 계속 인간성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마리안느 마가렛을 통해서 사람은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살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 그것을 세상에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게 아니고 남을 위해서 살 때 가장.

▶ 남을 위해서 살 때 굉장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



▷ 청취자 여러분들더 뭔가 하나 깨달음을 얻으셨을 것 같습니다. 오늘 문화라운지, 사단법인 마리안마가렛 대표이자 소록도

본당 주임이신 김연준 신부님과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