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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3.7 광주일보) 전라도 1000年 인물열전<7> 고흥-마리안느·마가렛②

관리자 2018-03-07 09:29:45 조회수 4,032

‘1000년의 눈물’ 소록도 자원봉사 성지 된다
2015년 익명의 한센인
500만원 기부로 후원회 결성
봉사학교 6월 개관 목표
노벨평화상 추천 추진
고흥군, 사택 등록문화재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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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6월 개관예정인 ‘마리안느·마가렛 봉사학교’ 조감도.

 

 

 “진짜 특별한 것 하나도 안 한다고 생각했어요. 환자들을 돕고, 환자들을 좋아하고… 우리 43년 동안 진짜 소록도에서 좋은 시간을 보냈어요.”

‘큰 할매’라는 애칭으로 불린 마리안느 스퇴거(한국이름 고지선)는 지난 2016년 4월 다시 소록도를 찾았다.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해져 소록도에 불편을 주기 싫어’ 홀연히 고향 오스트리아로 돌아간 지 11년 만에 소록도병원 개원 100주년을 맞아 방문한 것이다. ‘작은 할매’ 마가렛 피사렉(한국이름 백수선)은 노환 때문에 동행하지 못했다. 섬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40여년동안 언론 취재를 철저하게 마다했던 그는 이때 첫 공식 기자 간담회를 가졌다. 마리안느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하게 자원봉사를 해왔던 까닭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1962년에 여기 왔을 때 우리나라도 가난했고, 우리나라도 간호원들 부족했고. 그러나 부름 따라서 가는 거니까 (굳이) 알릴 필요없다고 생각했죠.”

◇어머니처럼 한센인 돌본 두 할매=푸른 눈의 두 ‘할매 천사’는 소록도 한센인들을 편견 없이 대했다. 한센병을 천형(天刑)으로 여겨 모든 이들이 한센인들을 외면할 때 두 사람은 환자들의 환부를 맨손으로 만졌으며, 무엇보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한센인들을 돌봤다.

간호사인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수녀가 아니지만 ‘수녀’로 불렸다. 소록도에 온 초창기에 두 사람의 삶이 거룩하고 성스러워서 누군가 ‘수녀님’이라고 부르면서 호칭이 ‘수녀’로 굳어졌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큰 할매’, ‘작은 할매’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김연준 소록도성당 주임신부(사단법인 마리안마가렛 이사장)는 사단법인 홈페이지(www.lovemama.kr)에 올린 글에서 ‘그분들과 함께했다는 게 행운’이었다고 말한다.

“…하루는 제가 너무 힘들어서 아침미사 끝나고 마리안느, 마가렛이 계시는 M치료실로 갔어요. 그때 저는 그냥 수녀님이라 불렀어요. 그래서 ‘수녀님, 차 한 잔 주세요. 힘들어 죽겠어요’하고 어머니한테 어리광부리듯이 의자에 앉으면서 말했어요. 그때 마가렛이 저한테 한마디 하시는 거에요. ‘신부님, 예수님은 제자들 발을 닦아드렸어요. 그것이면 돼요.’”

김 신부는 상처받지 않게 에둘러서 겸손하게 표현하지만 문제의 핵심을 찔러주는 마가렛의 말을 들으며 소록도에 왔을 때의 초심(初心)을 깨닫고 변화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소록도에서 검소하게 생활했다. 이러한 두 사람의 생활모습은 붉은 벽돌로 지어진 단층 ‘M관사’에서 엿볼 수 있다. 관사 주위는 아름드리 소나무와 삼나무가 둘러싸고 있다. 1938년 건립돼 소록도 역사를 담고 있으면서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40여 년간 의료 자원봉사를 하며 거주했던 관사는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16년 6월 등록문화재 660호로 지정됐다. 관사앞 안내판 문구가 눈길을 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43년간 살았던 이 땅과 집은 진정한 사랑의 집이고 헌신의 집이며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하는 집이며 자원봉사자들의 성지이다.”

사택 내부는 일본식 건물 특유의 좁은 복도를 중심으로 거실과 부엌, 방이 좌우로 자리하고 있다. 두 사람은 환우들을 집으로 초대해 직접 오븐에서 빵을 구워 식사를 하곤 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살았던 복도 끝 두 방은 단출하다. 방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듯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

남쪽 마리안느 방 창가에는 모국에 후원요청을 하는 편지를 썼을 작은 책상이 놓여있다. 소록도병원 100주년 개원 행사 때 방문한 마리안느는 호텔 대신 자신의 방에서 머물렀다. 북쪽 마가렛 방 격자형 유리창에는 ‘사랑’, ‘무’(無) 글자가 쓰여 있다. 방구석 작은 탁자에는 십자가와 수선화가 놓여있다. 그들의 소박한 방에서 두 사람이 어떤 삶을 지향했는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봉사학교 건립 등 선양사업 활발=지난 2015년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한센인이 500만원을 기부한 것을 시작으로 후원회가 만들어졌다. 이후 소록도내 한센인과 병원직원, 소록도 방문자들의 십시일반 모금운동이 펼쳐졌다. 그 결과 같은 해 12월 창립총회를 가졌고 종교와 이념을 초월해 소외받는 사람들의 등불이 돼 줄 ‘사단법인 마리안마가렛’이 첫걸음을 내디뎠다.

고흥군과 (사)마리안마가렛은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헌신적인 사랑과 봉사정신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선양사업에 힘을 모았다. 우선 2015년 ‘마리안느·마가렛 선양 조례’를 제정한 후 도로명 지정과 사택 등록문화재 지정, 기념우표 제작, 명예 군민증 수여, 연금지원, 오스트리아 가톨릭 부인회 초청 행사, 사진전 개최 등을 차례로 진행했다.

지난 2016년 8월 소록도를 방문한 오스트리아 가톨릭 부인회는 “부인회에서 여러 나라에 지원을 해 주었지만 이렇게 잊지않고 보답하는 행사를 하는 나라는 한국, 고흥뿐이다”고 말했다. 소록도병원 개원 100주년에 맞춰 2017년 4월에 두 사람의 아름다운 삶을 재조명한 다큐멘터리 ‘마리안느와 마가렛’(감독 윤세영·내레이션 이해인 수녀)도 만들어져 개봉됐다.

두 사람의 사랑과 봉사정신을 잇기 위한 노력도 활발하다. 고흥군 도양읍 봉암리 2336번지 일원에 ‘마리안느·마가렛 봉사학교’가 오는 6월 개관 목표로 건립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비 10억원과 도비 5억원, 군비 23억원 등 총 38억원이 투입된 봉사학교는 지하 1층·지상 3층 규모(전체면적 2029㎥)로 강의실(170석)과 기숙사(120명), 상담실, 보건실, 분임토론실 등을 갖추게 된다. 개관 때 마리안느가 다시 고흥을 방문할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또한 40여 년간 소록도에서 헌신적으로 의료봉사를 한 마리안느와 마가렛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 2월 초에 ‘마리안느와 마가렛 노벨평화상 범국민추천위원회’(위원장 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발족됐다. 추천위는 (사)마리안마가렛 홈페이지(www.lovemama.kr) 등 온·오프라인을 통한 100만인 서명운동을 비롯해 홍보활동에 발벗고 나섰다. 평창 동계 올림픽 개최 기간 중인 지난 2월 20일에는 오스트리아·한국 친선협회가 주관한 ’오스트리아 올림픽팀 환영 갈라 디너 콘서트‘에 참석해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헌신적 봉사활동상을 알리기도 했다.

박병종 고흥군수는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한센인이라는 이유로 세상의 편견과 그늘 속에 서 있던 분들을 희망과 사랑이 있는 따뜻한 세상으로 나오게 하신 분들”이라며 “두 사람의 박애와 인권, 봉사 정신을 널리 알리는 선양사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글·사진 송기동기자 song@kwangju.co.kr

/고흥=주각중기자 gjju@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