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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4.26.한겨레) 인터뷰할만큼 특별하지 않아...

admin 2018-01-31 20:15:49 조회수 2,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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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안느 스퇴거

 

단절의 땅이자, 절망의 섬이었다. 배를 타고 소록도의 땅을 밟는 순간, 세상과는 결별이었다. 한센병 환자들에겐 내일도, 인권도 없었다.

희망도 없었고, 자포자기 상태에서 자살의 유혹과 싸워야 했다. 심지어 가족들도 인연을 끊기 바빴다. 소록도에 보내놓고 사망신고를 했다.

 

 

그런 버림받은 땅에 오스트리아 수녀 2명이 나타났다. 오스트리아 국립간호대 동창생인 마리안느 스퇴거(82)와 마가렛 피사렛(81)이

소록도에 파견된 것은 각각 1962년과 66년. 20대 중반의 젊은 여성들이, 전염될까봐 마스크·장갑·방역복으로 무장하는 직원들과는

달리, 흰 가운만 입고 직접 6천여명의 환자를 돌보았다. 상처의 피고름이 얼굴에 튀어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40여년간 한결같은 봉사를 하던 두 수녀는 2005년 11월 홀연히 한국을 떠났다. 일흔이 넘어 혹시라도 병원에 부담이 될까봐

이른 새벽 편지 한 장만 남긴 채 조용히 사라졌다.

 


오스트리아 국립간호대 동창생
마가렛 수녀와 20대 중반 한국에
한센인들 맨손 돌본 ‘소록도 할매’

 

 

2005년 편지 한장 남긴채 홀연 귀국
“암투병으로 병원에 부담될까봐...”
병원 개원 100돌 맞아 첫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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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병원에서 맨손으로 한센인을 보살피고 있는 마가렛(왼쪽)과 마리안느(오른쪽) 수녀.

새달 17일 병원 개원 100돌을 맞아 국립소록도병원, 소록도성당, 전남 고흥군에서 두 수녀를 초청했다. 마가렛 수녀는

가벼운 치매 치료를 위해 요양원에 머무르고 있어 마리안느 수녀만 지난 13일 한국에 왔다. 그동안 이들의 아름다운 사연이

퍼지면서 한국 언론에서 수차례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한 번도 응한 적이 없었다. 정부나 여러 단체에서 주는 상도 늘 거절했다.

 

 

26일 소록도병원에서 처음 한국 언론과 만난 마리안느 수녀는 “소록도에서의 삶이 결코 특별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굳이

인터뷰를 하고 싶지 않았다”며 수줍어했다. 소록도 생활을 추억한 그는 “상처가 나아서 소록도에서 퇴원하며 가족과 만나는

환자들을 보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었다”며 “예수님의 복음의 힘으로 봉사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11년 전 한국을 떠난 이유에 대해 그는 “그때 대장암 수술을 3차례나 해 더이상 봉사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며

“마음이 무겁고 슬퍼서 떠나는 배에서 소록도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많이 울었다”고 회상했다. 또 요즘도 마가렛 수녀를 자주

방문해 소록도 추억을 되새기고 있다고 전했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 일본인들에 의해 개원된 소록도병원에서는 직원들이 환자에게 반말을 했고, 환자들은 직원을 ‘선생님’으로

떠받들어야 했다. 구타를 일삼았고 낙태와 강제 불임수술이 자행됐다. 한센병 환자는 3번 죽었다고 했다. 소록도로 격리된 게 첫번째

죽음(사회적)이고, 천형의 삶을 마감하는 것이 두번째 죽음(생물적)이고, 주검마저 해부되는 것이 세번째 죽음(치욕적)이었다.

장례가 2일장이어서 그나마 토요일에 죽기를 원했다. 일요일엔 해부를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두 수녀는 환자들에게 존댓말을 쓰고, 함께 식사를 했다. 나이 든 환자에게는 새벽마다 병실을 돌며 따뜻한 우유를 전해주었다.

허름한 창고를 고쳐 어린 미감아(한센병 환자의 자녀로 증세가 나타나지 않은 아이)들까지 보살폈다. 오스트리아에 있는 가족들은

많은 의약품을 보내주었고, 현지 부인회의 재정 후원 덕분에 영아원과 결핵 병동, 정신과 병동, 목욕탕 등을 지을 수 있었다.

두 수녀는 자신들을 위해선 한 푼도 쓰지 않았다. 빗자루가 부러지면 테이프로 붙여 썼고, 죽은 환자들의 옷을 수선해 입었다.

숙소에서 지네가 나와도 집을 고치지 않았다. 한센병 환자들은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고 된장찌개를 좋아하는 두 수녀를

‘소록도 할매’라 부르며 어머니처럼 따랐다.

 

 

마리안느는 이날 “하느님은 우리 가까이 있고, 그분의 힘으로 살고 있다”며 “예수님도 십자가에 박히는 고통으로 살았으니,

신앙 안에서 기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랑의 실천 방법으로 “아무리 미운 사람이라도 그 사람 안에

예수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 사랑할 수 있다”고 했다.

 

소록도성당(주임신부 김연준)은 ‘사단법인 마리안느마가렛’을 통해 두 수녀의 삶을 재조명하는 120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

올 연말쯤 개봉할 예정이다. 고흥군은 두 수녀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기로 했다.

 

 

소록도/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