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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7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김혜영입니다>) 김연준 신부 '마리안느와 마가렛, 내년 1월 노벨상 추천 예정'

관리자 2019-05-27 13:53:46 조회수 384

 

** 인터뷰 음성 파일은 별도로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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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 진행 : 김혜영 앵커

○ 출연 : 김연준 신부 / 사단법인 마리안느와 마가렛 이사장


[인터뷰 전문]

소록도에서 43년간 한센인들을 돌본 푸른 눈의 두 간호사.

오스트리아 출신 마리안느와 마가렛.

편지 한 장만 남기고 떠났었는데요.

두 간호사의 노벨평화상 추천을 위해서 국내 서명운동이 한창 진행 중입니다.

이제 국내를 넘어서 나라 밖으로도 나눔 정신을 알려 나갈 예정이라고 하네요.

사단법인 마리안느와 마가렛 이사장이신 김연준 신부님 연결해보겠습니다.



▷ 신부님 안녕하세요.

▶ 네, 안녕하세요.



▷ 영화 <마리안느와 마가렛> 개봉 이후에 2년 만에 저희 프로그램 나오셨습니다.

▶ 네, 반갑습니다.



▷ 마리안느와 마가렛 두 분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 여전히 마리안느는 시골에 집이 있고요. 그리고 마가렛은 양로원에 지금 계십니다.



▷ 두 분 다 건강이 안 좋으셨잖아요.

▶ 네. 마리안느는 건강이 좋아지셨고요. 마가렛은 그 상태 그대로시고요.



▷ 계속 요양 중이신 거고요.

▶ 네.



▷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소록도에 계셨을 때, 신부님도 소록도 본당 신부로 함께 생활한 적이 있으신 거죠?

▶ 보좌신부였습니다. 10개월 같이 살았습니다.



▷ 신부님께서 보신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겸손하신 분, 참으로 겸손하신 분이었습니다.



▷ 사실 소록도에서 한센인들을 위해 활동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한센인들이 마리안느와 마가렛을 유독 그리워하고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뭐라고 보십니까?

▶ 마리안느가 처음 소록도에 왔을 때가 1962년도인데, 이때가 대한민국 GNP가 전세계 꼴찌였어요. 가장 가난했을 때인데, 그러니까 먹는 것, 입는 것 모든 게 가장 열악했던 상태였고. 결정적으로 당시에는 한센인에 대한 공포가 너무 심해서 한국인 의사와 간호사들은 이중으로 장갑을 끼고도 환자들의 몸을 만지지 못했어요. 그런데 20대 중반에 아가씨들이 와서 환부를 맨손으로 피고름을 만지고 밥을 같이 먹고 했기 때문에 이분들은 엄청난 충격과 감동을 받게 됐죠. 그것이 이제 한센인들의 마음을 완전히 움직이는 사건이 됐습니다.



▷ 마리안느와 마가렛 두 분이 자신들의 삶이 담긴 영화를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 그럼요. 아예 저희들이 영화 제작한 이후에 사실 인터뷰는 처음에는 안 한다고 했는데 인터뷰를 다 해주셨고, 또 저희들이 마리안느와 마가렛을 인스부르크로 가서 마리안느와 마가렛 초대하고 가족들까지 다 초대해서 극장에서 아예 그냥 상영이 됐었어요. 정말로 많이 고마워했고, 감동했고, 주변 사람들도 새롭게 인식했고, 위로를 많이 받았었습니다.



▷ 마리안느와 마가렛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기 위해서 범국민 서명운동을 해오고 계신데요. 당사자인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원하진 않으셨던 걸로 알고 있거든요.

▶ 당연히 그분들은 겸손해서 원하지 않았습니다.



▷ 그래도 노벨평화상 추천을 추진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 그것은 우리한테 필요해서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개인적으로 영화를 제작하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게 사실 영화도 처음에는 이분들이 원하지 않았거든요. 설득을 했어요. 대한민국은 감동이 필요하다. 내가 두 분을 높여드리자는 게 아니라 뉴스를 보면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맨날 싸우고 찢어지고 갈라지고 분열된 것만 만들어진다. 그러다 보니까 사실은 우리한테 만들어진 용어가 헬조선이잖아요. 그래서 대한민국은 좀 감동이 필요하다. 그래서 마리안느가 소록도에 왔을 때 절망적인 상황에서 항상 희망을 얘기하지 않았느냐. 두 분은 삶 자체로 숨으려고 해도 숨을 수가 없다. 빛은 드러날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우리에게 감동이 필요하고 또 우리한테 감사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노벨평화상은 사실은 두 분이 받냐, 안 받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빈손으로 떠나신 우리가 그분들의 노후를 보장해주지 못한 우리의 부끄러움을 가려주는 것이고, 또 감사할 것에 감사하는 것이고 희망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그런 차원입니다, 사실은.



▷ 서명운동에 지금까지 몇 분이나 참여하셨습니까?

▶ 지금 온라인 상으로는 50만 명이 조금 넘었고요. 이제 오프라인 상으로는 지금 대한간호협회가 주도를 해서 아마 6월, 7월까지는 100만 명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 서명은 어디서 어떻게 받고 계신 거예요?

▶ 이제 온라인은 저희 사단법인 마리안느와 마가렛 홈페이지가 있어요. 인터넷으로 다음이나 네이버에 사단법인 마리안느와 마가렛 치시면 아니면 카카오스토리에 사단법인 마리안느와 마가렛 치시면, 저희 홈페이지 상위에 모바일용이나 PC용으로 뜨거든요. 거기에 들어오시면 바로 서명하는 란이 있습니다.



▷ 그럼 공식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은 언제쯤 하실 계획이세요?

▶ 이제 지금부터 그 준비를 하고 있는데, 원래 마감이 내년 1월까지예요. 그래서 다행히 내년이 나이팅게일 탄생일 200주년이에요. 마리안느가 간호사니까. 그것과 연결해서 홍보할 생각입니다.



▷ 얼마 안 남았습니다.

▶ 네, 얼마 안 남았습니다.



▷ 그동안 서명운동이 국내를 중심으로 진행됐는데요. 마리안느와 마가렛 노벨평화상 추천 범국민위원회가 국제활동도 시작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일들을 계획하고 계십니까?

▶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일단 간호사잖아요. 그런데 다행히 작년에 어떤 일이 생겼냐 그러면, ICN이라고 국제간호협회 회장이 방한을 했어요. 9월 말에 방한을 했는데. 이때 대한간호협회 회장이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간호사 <마리안느와 마가렛> 영화라든지 그 다음에 나눔연수원, 노벨평화상 운동 얘기를 듣고 큰 감동을 받았고, 그 국제간호협회 회장이 이것은 대한민국만의 일이 아니라 전세계 간호사들의 일이라고 하면서 앞으로 세계간호협회 차원에서 추진을 하겠다고 선언을 했고. 그 첫 번째 일환으로 올해 6월 싱가포르에서 국제 간호사들 학술대회가 있거든요. 전세계의 각 나라 회장단이 참석해서 130여 개국 회장단이 참석해서 한 5000명 정도가 모인다고 들었거든요. 이때 현재 한국 노벨평화상 추천위원장이신 김황식 총리를 초청했어요. 저희들 홍보 부스를 마련하고, 각 나라 대표 간호사들에게 마리안느와 마가렛을 홍보하고, 전남도의회에서도 같이 함께 참여해서 그날 행사 당일 메인 행사에는 저녁에 또 한국 간호사의 밤 해가지고 마리안느와 마가렛을 홍보할 생각입니다.



▷ 마리안느와 마가렛을 정말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 아마 터닝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국제적인 행사로서.



▷ 두 분의 정신을 세상에 알리려고 사단법인 마리안느와 마가렛도 설립하셨잖아요. 그동안 다양한 일들을 해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일들 해오셨습니까?

▶ 일단은 가장 먼저 법인에서 했던 가장 중요한 사건 중의 하나가 영화 제작이었습니다. 이분들이 돌아가셔 버리면 영상이 없거든요. 그래서 일련의 가장 중요한 영적인 문화유산을 잃는다고 생각을 했고. 돌아가시기 전에 꼭 영화를 제작하고 싶었는데 다행히 영화가 만들어졌고. 또 나름 호평도 받았는데, 일단 영화 제작이 법인에서 가장 큰 사건이고. 또 마리안느와 마가렛에 연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법인에서. 그것을 하고 있고. 그 다음에 마리안느와 마가렛 정신을 알리는 연수원이 건립돼서 공무원들 인권 청렴 교육이라든가, 간호사들의 봉사, 자원봉사자들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 올해 3월에 문을 여신 거죠.

▶ 네, 3월 27일 개관을 했습니다.



▷ 장학금도 지원하고 계시던데요?

▶ 네. 장학금도 현재 우선 소록도 고흥군 근처에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에 먼저 성적 위주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 위주로 장학금 지원하고 있고. 그 다음에 외국에도 캄보디아 대학생이 4년제 전액 장학금이 우리나라 돈으로 1200만 원이면 용돈 포함, 책값 포함해서 4년제 전액 장학금이 돼서 일단 4명에게 1200만 원. 4명에게 전액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볼리비아 쪽에도 무료급식소 구축, 그 다음에 의약품, 선교사 지원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사랑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랑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 네. 그 목표로 설립된 곳입니다.



▷ 20대에 한국에 와서 평생을 보내다가 "이제 더 이상 줄 게 없다. 짐이 되지 않겠다"면서 고국으로 돌아간 마리안느와 마가렛. 두 분이 평생 무소유의 삶을 살면서 사랑을 베풀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뭐라고 보세요?

▶ 사실은 희망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사실 이분들이 소록도가 국립 소록도병원이거든요. 간호사로서 살았는데, 사실 이분들이 보수를 받지 않아요 평생을. 그러니까 월급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행정조직에는 없는 사람이 된 것이고, 연금이 없잖아요. 사실은 사람들이 영화에서도 차마 자세하게 말할 수 없었던 게 있었는데, 이분들이 떠나려고 한 것이 아닌. 사실은 젊었을 때 소록도에 뼈를 묻겠다고 자주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수녀님들로 불려져 버렸기 때문에, 병원에서는 일반인들은 월급을 주지 않아도 수녀원에서 잘 사신다고 생각을 한 거예요. 노후가 없었어요, 이분들은. 그러니까 수녀님으로 불려졌기 때문에 다들 수녀원에서 알아서 해주겠지, 해주겠지 생각했고. 심지어는 편지 한 장 남기고 떠났을 때도 어떤 분들은 박수를 쳤어요. 왜냐하면 평생을 소록도에서 고생하셨으니까 수녀원에서 노후를 편안하게 보내겠구나 하고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한 분도 많았거든요. 그런데 사실이 아니거든요. 수녀님들이 아니셨기 때문에 자기 집으로 간 것이 거거든요. 그런데 70대 노인네를 빈손으로 가는 노인네를 누가 환영해 주겠어요. 그러니까 이분들이 자기의 노후를 하나도 준비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놀라운, 인간의 가장 본능 중의 하나잖아요. 노후의 안정을 꿈꾸는 것은. 그러니까 이분들이 그렇게 빈손으로 그리고 자기의 노후를 월급을 받지 않고 연금 없어도 누구한테도 이거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았고. 지금은 자기의 어떤 그런 노후가 돼서 일을 할 수 없으니까 자원봉사자 신분이니까 소록도에서는 집을 구해줘야 한다는 그런 강박관념이 생긴 거예요. 더군다나 결정적으로 마리안느가 췌장암에 걸렸고, 외국인 신분이었기 때문에 보험 적용이 안 됐고.



▷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 떠날 수밖에 없었죠. 부담 주기 싫다는 이름으로 떠난 거죠. 이렇게 가능한 이유는 저는 신앙. 그분들이 그리스도왕 시녀회 재속회원이었거든요. 종의 정신을 평생을 가지고 살았죠. 그래서 이분들의 삶의 원동력은 신앙으로 밖에는 설명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 아침부터 마음에 따뜻한 울림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사단법인 마리안느와 마가렛 이사장이신 김연준 신부님 만나봤습니다. 인터뷰 고맙습니다.

▶ 감사합니다.